본문 바로가기
캐릭터

크레토스(갓 오브 워)의 복수와 아버지로의 성장

by 캐릭터랩 2025. 5. 16.
반응형

크레토스는 단순한 복수심의 전사로 시작했지만, 그 여정은 신화를 초월한 인간의 내면 탐구로 이어졌다. 그는 분노의 화신이었고, 오직 파괴만이 그의 언어였다. 그러나 ‘갓 오브 워(신들의 전쟁)’ 시리즈가 이어질수록, 크레토스는 복수자에서 아버지로, 신살자에서 인간으로 서서히 탈바꿈했다. 이 글은 그 내면의 변화와 내적 성장, 그리고 복수와 부성의 이중 여정에 대해 탐색한다.

분노로 태어난 자, 스파르타의 유령

크레토스의 시작은 철저한 비극과 배신이었다. 그는 스파르타의 장군이었고, 전장에서 명성을 떨쳤다. 하지만 아레스와의 계약, 그 어두운 선택은 그를 신들의 꼭두각시로 전락시켰다. 가족을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백색 재로 뒤덮인 그의 몸은 죄책감의 상징이 되었다. ‘스파르타의 유령’이라는 별명은 단순한 외형을 넘어 자신을 잃은 자의 은유였다.

복수는 그에게 남은 유일한 목적이었다. 그 분노는 무한했다. 그가 죽인 신들의 명단은 곧 올림포스의 붕괴 목록이었다. 제우스를 비롯해, 그의 아버지이자 권위의 상징이었던 신들을 하나하나 쓰러뜨리는 과정은 단순한 전투의 나열이 아니라 체계적인 해체의 과정이었다. 그는 단순히 신을 죽인 것이 아니라, 신화라는 권력 구조를 부정한 자였다.

복수의 끝, 허무의 시작

모든 신을 쓰러뜨린 후에도, 크레토스는 평화를 얻지 못했다. 그는 모든 것을 파괴했지만, 스스로를 구하지는 못했다. 여기서 시리즈는 방향을 전환한다. 이전까지는 신화 속 질서에 대한 전복이 중심이었다면, 이후는 내면의 재건과 화해가 주제가 된다.

‘갓 오브 워(2018)’는 새로운 세계, 북유럽 신화의 무대에서 시작된다. 그는 과거를 버리지 못한 채 도망쳐 있었고, 그 속에서 아들의 죽은 어머니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여정을 시작한다. 이때부터 복수의 이야기는 점차 부성의 이야기로 전환된다. 아들에게 과거를 숨기려 했지만, 그 과거는 계속해서 그를 찾아온다. 복수는 끝났지만, 과거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들의 이름, 아트레우스: 새로운 신화를 향한 유산

아트레우스는 단순한 동반자가 아니다. 그는 크레토스의 또 다른 자아이자, 미래의 상징이다. 크레토스는 아들에게 자신처럼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분노를 억누르고, 감정을 통제하며, 과거를 숨긴다. 그러나 아이는 자라고, 결국 그 과거와 마주해야만 한다. 이는 단순한 '비밀의 폭로'가 아니라, 아버지로서의 책임과 한계의 충돌이다.

아트레우스가 자신의 신의 정체성과 로키라는 이름을 깨달아가며, 두 인물은 갈등한다. 크레토스는 운명을 거부하고 싶어했고, 아트레우스는 운명을 알고 싶어 했다. 이 갈등은 부자 관계를 넘어서, 세대를 관통하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운명은 정해져 있는가, 아니면 선택 가능한가?” 이 철학적 물음은 전작들의 피비린내 나는 서사와는 또 다른 차원의 긴장감을 제공한다.

전쟁의 신, 교육자로 다시 태어나다

크레토스의 진정한 변화는 검을 쥔 손이 아니라, 말을 선택할 때 일어난다. 아들에게 화내지 않고 설명하려 노력하는 장면, 감정을 숨기며 겉돌지만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모습, 이것이 진짜 전쟁이었다. 분노와 폭력으로 점철된 그의 인생에서, 이제 그는 대화를 배우고 있었다. 이는 신들과 싸운 것보다도 더 고통스럽고 긴 여정이었다.

우리는 크레토스의 변화에서 현대적인 남성상에 대한 재정의를 본다. 그는 무적의 전사가 아니다. 그는 실수하고, 후회하고, 숨기고, 용서를 구한다. 그는 더 이상 영웅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으로서의 위대함을 향해 가고 있었다.

아버지로서의 성장, 역설 속의 구조물

크레토스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절대 떨쳐내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다. 그는 아들에게 “우리는 괴물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구속했던 정체성을 벗으려 한다. 이 과정에서 반복되는 핵심은 바로 선택의 의지다.

신들도, 운명도, 복수도 모두 외부의 강제였다. 그러나 아버지로서의 삶은 내면의 결단이었다. 아들에게 닥쳐올 운명을 피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운명을 선택할 힘을 길러주는 것. 이것이 크레토스가 최종적으로 이해한 아버지의 역할이다.

복수의 도구에서 신화의 창조자로

이제 크레토스는 파괴자가 아니라 창조자로 나아가고 있다. 북유럽의 신화 속에서, 그는 이미 중심축이 되었고, 신화의 흐름을 바꾸는 자가 되었다. 이는 단순히 파괴의 결과가 아니라, 삶을 이해한 자만이 이룰 수 있는 변화다.

아들의 선택을 존중하며 그를 떠나보내는 장면은, 잔혹했던 올림포스의 복수자와는 전혀 다른 인간상을 보여준다. 크레토스는 더 이상 운명을 부정하는 자가 아니라, 운명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아는 자로 진화했다.

크레토스라는 존재가 던지는 질문

우리는 크레토스를 통해 자문하게 된다. “복수는 진정으로 끝낼 수 있는가?” “과거는 버릴 수 있는가?” “부성은 본능인가, 선택인가?” 그는 완벽한 답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고통을 받아들이는 법, 상처를 자각하는 법,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바뀌는 법을 보여준다.

이는 신화를 넘어선 서사다.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다.

신화를 죽인 자, 인간을 배운 자

크레토스는 더 이상 무적의 존재가 아니다. 그는 실수하는 존재, 흔들리는 존재, 그러나 멈추지 않는 존재다. 복수의 화신으로 시작해, 아버지의 상징으로 변화한 그의 서사는 단순한 게임의 내러티브가 아니다. 그것은 신화를 죽인 자가 인간을 배우는 여정이자, 분노로 시작된 이야기가 사랑으로 닫히는 구조다.

그는 올림포스를 파괴했지만, 아들의 미래는 무너지지 않게 지켜냈다. 그 한 걸음, 그 선택, 그 유산이야말로 크레토스라는 존재의 진짜 힘이었다.

반응형